맛집/여행 매거진 리스트 - 여성포털이지데이

로비에서 어색하지만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의 도움을 받아 짐을 보관하고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야하는가 잠시 난감함에 이마를 긁적였다. 본래는 체크인을 하고 난 후 아소산에 가야지 생각했던 터였는데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이미 오후 1시를 넘긴 지금 시간 시간에 다녀오기에는 조금 요원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 하루는 여기 아소 팜 랜드에서 보내야 한다는 말인데 무엇을 하면서 지내야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껏 감성 여행이라고 해놓고 돌아다녀보면 내가 감성은 제대로 찾고 있는 건지 어쩐지 문득 의뭉스러워지는 때가 생기는데 딱 그 사태에 돌입해 버렸다. 자, 무엇을 해야 말 그대로의 감성 여행이 될까.

일단 이렇게 된 거 아무 생각 없이 내쳐 걸어볼까 싶어 방향을 잡은 것은 아소 팜 빌리지를 두루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은 전망대. 산 중턱에 위치한 곳답게 주변에는 산등성이가 둘러져 있고, 그 자락에 아기자기한 이글루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게 내려다보인다. 아소 팜 빌리지의 특색은 바로 이렇게 객실 하나하나가 이글루로 지어져 있다는 것. 그 모아놓은 게 꼭 바둑알들 같다는 생각도 살짝 든다.

계단을 내려와 이글루 객실의 사잇길을 누비고 다니다 늦가을 낙엽이 깔린 흙길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분수대며 아소 팜 빌리지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의 정류장등을 지나치고 마침내 두 번째 전망대에 도착했다. 멀찍이 아소산의 장쾌한 산맥이 보이고 아소 팜 빌리지의 전경을 보며 넋을 놓았다가 인적도 드문 곳에서의 스스로에 대한 무안함에 얼른 내려와 다시 아소 팜 랜드쪽으로 향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이 아니고 녹음이 지는 따스한 계절이었다면 잠시 앉아 독서하기도 좋을 것 같은 곳을 지나 로비가 있는 건물을 지나, 식당 건물도 지나치자 본격적으로 종합 레저타운다운 아소 팜 랜드의 재밋거리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소 팜 랜드에는 동물의 왕국, 화산 온천, 공예관, 건강의 숲, 글래스관, 오르골 관, 그리고 갖가지 상점과 유기농 마켓 등 있어 가족이나 친구, 연인들이 함께 온다면 참 유익할 곳인데 혼자 여행 온 나에게는 조금 재미가 떨어지는 곳이긴 하다. 그래도 군데군데 숨겨져 있는 예쁜 것들이 눈에 뜨이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추어서고, 슬며시 미소도 지어지고 하는 것으로 봐서는 나도 아주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소 팜 랜드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축내다보니 어느새 체크인 가능한 시간이 다가왔다. 가방에 두었던 짐 보관용 칩을 찾아 배낭을 찾고, 프런트에서 숙소를 배정받아야겠다며 칩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방을 거의 뒤집다시피 하고난 후에야 비로소 그걸 잃어버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를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뭐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으니 일단 그 한국어 가능한 직원에게 칩을 잃어버렸다고 사실대로 말하고 배상을 해야겠구나 생각하며 로비로 향해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흔쾌하게 그냥 짐을 찾으셔도 되고 혹시 나중에라도 찾으면 달라고 말하는 통에 크게 한 시름 놓았다.

배정 받은 객실은 두 번째 전망대가 있던 곳으로 배낭을 메고 걸어가자면 조금 버거운 거리라 마침내 아소 팜 빌리지에서 운행 중인 셔틀버스에 탑승했다. 한국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본 기사님이 한국어로 인사를 해주시고, 숙소 근처에 버스를 세워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내려선다.

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건 커다란 더블침대. 그리고 반구형으로 된 지붕과 지붕의 중심에 보이는 동그란 창을 통해 보이는 원형의 파란 하늘.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초롱초롱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얼토당토하지 않은 생각을 해봤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그저 재미있는 구조의 경험만 했다.

짐을 풀고 풀썩 침대로 쓰려졌다. 달리 한 것도 없이 그저 아소 팜 랜드만 배회하고 났는데 어쩐지 기운이 쏘옥 빠져버렸다. 이미 돌 곳은 다 돌아다닌 것 같고 딱히 더 이상 갈 곳도 없을 것 같아 잠시 책이나 읽으며 여유를 부려볼까 싶어 배낭에 넣어둔 책을 꺼내들었다. 이번 여행에 동반된 책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레벨 7’이었다. 딱히 여행에 어울릴 것 같다고 고른 책은 아니었고 무슨 책을 읽을까 하고 책장을 훑다가 눈에 뜨여서 덜컥 챙긴 책이었다. 상하 두 권으로 된 레벨7은 미스테리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쯤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 특유의 벌려놓고 풀어놓는 이야기 구성이 쏠쏠한 재미를 불러왔다.

반권쯤 읽고 나자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책을 내려놓고 작은 가방 하나 챙겨 객실을 나와 문을 잠그고 셔틀버스를 탈까하고 정류장에 기다리다 슬슬 걸어야지 싶어 어둑하게 저녁으로 물든 아소 팜 빌리지의 길을 걸었다. 첫 번째 전망대에 올라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아소 팜 빌리지를 보며 살짝 사색에 잠겼다가 내려오니 어느새 아소 팜 랜드 사무소 앞의 로비에도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어쩐지 낮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길을 지나쳐 아소 팜 랜드의 식당건물 2층에 있는 월드 키친으로 향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었는데 제법 괜찮은 곳이었었고, 달리 다른 곳에는 흥미가 일지 않아 선택한 것이었다. 뷔페로 된 월트 키친은 25개국, 100여개 이상의 음식이 있다는 곳이다. 점심때보다 종류는 좀 더 다양해 진 것 같은데 점심때는 별로 없었던 손님이 단체관광객 몇 팀이 나타나자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해져 버렸다. 결국 대충 저녁을 해결하고 식당을 나섰다.

가방에는 온천에서 사용할 물품들이 들어 있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온천에 몸을 담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챙겨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월드 키친의 그 많은 관광객들을 보곤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네들이 식사 후에 온천을 한다는 말을 듣고 나서 식당 못지않게 시끌시끌할 온천을 생각하니 갈 마음이 싹 사라지고만 터였다. 결국 가득 불러버린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다시 아소 팜 랜드로 향한다.

전구에 불이 들어온 아소 팜 랜드의 길은 한층 화려해져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 사람들 틈에서 사진 몇 장을 찍어놓고 유기농 마켓까지 다시 걸어갔다 까맣게 어둠이 내린 아소 팜 빌리지를 걸어 숙소로 향한다. 둥글둥글 이글루의 객실들에도 어느새 불이 밝혔고, 감성 여행이라고 하기에도 어설픈 하루가 끝이 나려고 한다.

온천에 가지 못해 가볍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멀리며 책을 읽다 별이 보고 싶어 천장의 둥근 창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별은 보이지 않고 새까만 심연만 보인다. 조금 별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결국 파카를 입고 객실을 나섰다. 공기가 맑은 아소의 중턱엔 역시나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촘촘히 반짝이고 있었다. 조명이 없는 곳을 찾아 슬렁슬렁 걸어 마침내 멈추어 서서 목을 뒤로 꺾어 한참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달리 어떠한 성과를 얻을 것도, 마땅히 기억에 담아둘만한 경험도 없었던 아소 팜 랜드의 하루였지만 간만에 보는 별 하나만은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았다. 그래, 뭐 감성 여행이라는 게 별 건가. 밤의 어둠을 살라먹고 아련하게 빛을 발하는 별을 구경하는 것도 감성 여행인거지.

아소팜 랜드 여행정보

+ 찾아가기 : 아카미즈역에서 아소팜랜드로 가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기본요금 640엔, 주차장까지 1,100엔이더라구요. 약 15분 소요.

버스도 있긴 하다는데 관련 정보를 못 찾겠네요.

+ 오픈시간 : 09:00~17:00

+ 문의전화 : +81-0967-67-2100

+ 홈페이지 : http://asofarmland.co.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