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나는 항상 생각한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 말한다.
"과도한 기대감으로,
근거 없는 설렘으로,
여행을 낭비하지 말자!
대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저하게 내 자신에게 축제를 베풀자!
이 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돈황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 뜨거운 땅의 폐부 속으로 깊숙히 들어간다.
돈황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진 곳, 먼저 사연의 땅, 양관고성(陽關古城)을 찾아간다.
돈황 땅은 지금 엄청난 홍역을 앓고 있다. 자원 개발이라는 미명으로, 인프라 구축이라는 산업화의 구실로, 돈황, 아니 신강성과 감숙성의 대부분이 포도(鋪道)의 껍질을, 콘크리트의 부스럼을, 맹렬히 덧칠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앉아가는 나그네는 해마다 호강의 척도를 더하고, 갈 길 급한 객군들의 시계는 매년 촌음을 아낄 수 있다.
끝점이 보이지 않는 무한 직선 도로! 다섯 시간을 핸들에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도 차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이런 심심한 길일수록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가 더 많이 나는 법! 노래와 운전은 꺾는 맛이고, 춤과 도로는 도는 맛인데...ㅋ
착한 사람 눈에는 저 앞에 부처님이 보인다고 한다.
어디 어디?
왼쪽에 머리를 두고 누워계신 부처님!
나도 보여요!!!!
양관고성(陽關古城)! 돈황이 불과(?) 당나라 시절부터 번성했던 도시라고 한다면 이곳 양관은 한나라 무제때 중국 대륙의 서쪽을 관장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2,00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의 더께가 쌓인 곳!
즉, 중국 땅을 밟기 위해 들어오는 서역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그리고 중국 땅을 떠나 멀리 서역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오늘날의 국경 출입국 검문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을 지나야만 아얼진 산맥을 넘어서 곤륜 산맥을 에둘러, 인도(天竺國)로 갈 수 있었다. 열아홉 살의 혜초스님도 이 곳을 지나 서역을 다녀오며 <왕오천축국전>이라는 희대의 지리서를 썼고,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실제 모델인 현장법사도 역시 이곳을 경유하여 천축으로 갔다.
만리장성의 서쪽 관문으로는 감숙성의 <자위관>이 있고, 북쪽으로 만든 관문이 <옥문관>! 그리고 남쪽 관문이 바로 여기 <양관>이다. 그리고 동쪽 관문은 요동성의 <산해관>! 그 옛날, 고구려의 후예로 당나라의 대장군이 된 고선지(高仙芝) 장군도 당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이 곳을 경유하여 동진하던 이슬람의 사라센 제국의 힘을 분쇄했다. 이 관문을 통해 왕래한 우리네 선조가 그들 뿐이겠는가. 그만큼 여기는 우리네 사연도 많은 곳이다.
서역을 개척하고 양관을 설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한나라 '장건' 장군의 석상!
고대 실크로드가 형성될 무렵 양관의 위치와
양관이 담당한 인근의 교통로!
한 눈에 봐도 여기는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간이 매점에서는 오늘날의 여권(旅券)처럼 당시에 사용되었던
국경 출입증 모형을 판매하고 있다.
이건 기념품에 불과하고,
우리같은 여행객은 매표소에서 관람권을 따로 끊어야 한다.
그런데 저 오묘한 표정은...? ㅋ
여권 역할을 하는 관첩(關牒)!
지역 행정부 책임자와 군사 책임자의 동반 허락이 필요하다.
삼국지에서 관우가 조조의 포로 아닌 포로로 구금되어 있을 때
유비가 살아있다는 기별을 받고,
조조의 묵인하에 주군인 유비를 찾아 떠날 때
이 출입증이 없어서, 부득불 신세를 졌던 조조의 수많은 부하를 베고 갔다는,
그 시절의 그 서슬 퍼랬던 출입증이다.
시간은 바야흐로 정오를 넘보고,
외부 온도는 40도를 상회한다.
봉수대까지는 몇 백m를 올라야 한다는데...
저 나귀의 힘을 좀 빌렸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한 순간...
짜잔~ 눈앞에 등장한 현대식 전동차! 이 차를 타고 우리는 양관 고성의 핵심부로 올라간다.
사막의 강렬한 열풍이 얼굴을 감싼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밀어닥치는 열기!! 여기가 사막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로 했다.
왼편으로 양관(陽關)이라는 두 글자가 보이고, 저 멀리엔 봉수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동차는 어느 지점에서 우리를 내려놓는데,
여기서부터 허용되는 교통수단은 두 다리 뿐이다.
오염 하나 없는 열사의 하늘은
있는 그대로의 자외선을 마구 방출하는데,
나그네들은 복면 강도를 방불케 할만큼 온 몸을 감싸고 나머지 사막을 오른다.
옛 모습을 재현한 건물! 그나마 이 사막의 유일한 그늘막이다.
양관 봉수대(熢燧臺)! 일그러졌지만 당시의 것 그대로 보존 중이다. 그 시절, 이 곳에 위급 사항이 생기면 여기서 불을 피워 안서도호부 (신강성, 감숙성, 청해성 및 위구르 지역을 관장하던 곳) 등으로 알리던 곳이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 기후가 흙벽돌로 만든 봉수대를 이나마 지켜왔을 터!
양관 초소! 그 곳을 보기 위해 한여름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며 뜨거운 사막을 걸어서 간다. 모래 밭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그야말로 화염불이다.
이런 곳에서 체감 피로도는 그야말로 물 먹은 화장지! 혓바닥 길게 빼물고 헥헥 대며 그저 걷고 있을 뿐이다. 내가 왜 저길 가고 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 거짓말 같이 나타난 봉황!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저 모습은 첫 눈에도 봉황이다. 저 봉황을 만나려고 사막길을 그렇게 몽롱하게 걸어왔던 게야!!
그런데 잠시후 그 옆에 용이 나타났다! 하늘을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모습으로!! 이건... 꿈을 꾸고 있는게야! 아니면 사막에서, 아니 하늘에서 신기루를 보고 있거나... 몇번이나 눈을 부비고 봐도 봉황과 용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아!!!! 대륙은 구름마저도 스케일이 다르구나!!
여기부터는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는 의미의 사막! 그리고, 시루떡 한 장을 엎어둔 듯한 오아시스! 사막에서의 오아시스는 물이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이다.
사막은 두 가지가 있다. 나무도 가끔, 풀도 가끔씩 있는 곳이 있고, 타클라마칸처럼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 없는 곳도 있다. 이런 곳에 모랫바람이 불면 모든 것은 순식간이다.
저 모래층 밑에는 누가, 무엇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썩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그들이 묻혀서 지금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도... 가끔씩 그들은 이곳에 도로를 놓거나 건축물을 세울 때 비로소 깨어나서 당시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고... 그들을 "미이라"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에 모셔두기도 하는데, 실은 너무 많아서 정부에서는 처치 곤란이라고 한다.
열사의 사막 위에 움직이는 것은 죄다 나그네이다.
그들은 석유를 찾아 온 것도 아니고,
모랫바람 속에 떠내려 간 옛 사람의 흔적을 찾으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소박한 설렘 하나씩을 배낭 속에 짊어지고
천리 먼 길을 바람 따라 떠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다. 사막은 그저 죽어 있는 게 아니었다. 아주 빠른 속도로, 아주 왕성한 생명력으로 사막을 활보하는 생명체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너~! 이 지구별의 황무지, 타클라마칸 사막에 살고 있는 생명체 맞니?
아주 명쾌한 답변~!
굳이 말이 필요없단다.
그는 꼬리로 말한다.
"당연하지~!!" ㅋ
사막은 불모지가 아니었다. 비룡도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서 하늘을 비상(飛翔)하고 있었고,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봉황도 서역 하늘에서 착한 나그네를 희롱하고 있었으며, 냉혈 동물이라는 파충류도 체감온도 50º를 넘나드는 가마솥에서 현대 과학을 조롱하며 잘 살고 있었다.
민가 가까운 곳에서는 두 발 달린 포유류와 네 발 달린 포유류가 공존하고 있기도...
열악한 조건이라는 것은 단지 이방인들이 그들의 시각으로 관찰했을 때의 모습일 뿐, 그들은 어디에서건 잘 살고 있었다. 사막은 2,000년의 시공을 초월해서도 여전히 생활의 공간이었던 것!
가까운 곳에서는 그 시절의 모습과 일상들을 부장품과 골동품을 통해 설명하려 애쓰고 있었다. 사막 아래에서의 눈부신 조명과 달리 토굴 속의 은밀한 조명 아래서...
불모지 타클라마칸 지역은 옥(玉)의 주생산지이다. 특히나 호탄옥(和田玉)이라고 하는 중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옥이 생산되는 곳! 우윳빛이 은은한 상품의 호탄옥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중국인들은 특별히 옥을 좋아한다. 옥에서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기가 방출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죽은 자의 몸에서 나온 옥은 금기시하는 게 중국인들의 풍습!
현지인 점원이 무언가를 직접 불어보기도 하며 열심히 설명하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외계인의 방언일 뿐! 그저 소리에 불과하다. 매우 낯선... 그러나 왜 저렇게 간절히 설명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을 듯!
낯선 혹성에서 완벽히 방전해버린 지구인들의 간절한 휴식 시간! 그 휴식의 장소는 디오니소스의 곳간, 포도밭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곳! 아~ 푸르름은 이래서 좋은 것이구나. 그늘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거구나!
상업용이 아닌 정원수로 키운 탓으로 아직은 설익은 맛이지만, 몰래 따먹어 본 그 맛은 달고도 달았다. 역시 포도의 본향다운 맛! 몰래 훔친 것은 모든게 맛있고 아름답다는 것은 사막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 때 등장한 얼음 수박!
이것도 가이드가 써~비스 하는 것이라네~
과일로 인심 팍팍 쓰는 걸 보니,
과일이 싸긴 싼 모양이다.
차가운 수박 한 조각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너무나 달고 시원한 맛!
수박이 그대로 눈물이 되어 흘렀다는...ㅎ
그 옛날,
사막 위의 대상들은 이렇게 뜨거운 날은
그늘을 찾아 혹은 그늘을 만들어 자고, 밤에만 걸었다고 한다.
별 빛으로 방향을 잡아서...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을 것이다.
무지한 나그네들은 백주 대낮에 겁없이 사막을 찾았다.
그리고 맛만 보고 겉만 간사하게 핥고 갈 뿐이다.
그 까닭은 살기 위해 사막을 찾은 게 아니라,
설렘을 달래기 위해 왔으므로...
사막은 나그네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 곁에 그토록 흔한 푸르름도 고맙게 만들고,
개울마다 흘러 넘치는 도랑물도 감사할 따름이고,
심지어 마트마다 넘쳐나는 값비싼 여름과일마저도 아름답기만 하다.
폭염으로 잔혹한 이 여름,
마음 먹고 사막을 찾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