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다.

아팠다.

하지만 그만큼 난 성숙했다.

성인봉 등정의 후유증으로 다리가 무척 아팠다.

 

하지만 그건 내가 진정 성인이 되기 위한 성장통처럼 느껴졌다.

 

첫날, 울릉도에 입도하고,

둘째날, 성인봉을 올라갔다 와서

사흘째날의 아침을 맞는다.

 

이틀밤을 묵었던 "추산일가"는 "추산"에 있는 펜션이다.

 

 

추산은 해발고도가 430m 에 이르는 뾰족한 봉우리인데,

송곳을 수직으로 세워놓은 것 같다하여 그 이름도 송곳 추(錐)자를 써 추산(錐山)이란다.

 

 

추산 일가는 진정 세계 최고의 전망을 가진 곳이라 할만 했는데,

테라스로 나가면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구불구불~

섬의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해안도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또 하나, 이 펜션은 얇고 넓은 판재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이었는데,

너와집은 환기와 잘 되고, 단열·보온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울릉도에와서 "너와집"에서도 자 보고...

그야말로 여행이 선사해주는 다채로운 경험이다.

 

 

개집 (dog house) 마저도 너와집!

 

아무튼 이곳 추산일가는 빼어난 풍경과 너와집이라는 독특함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만, 음식맛과 주인아주머니의 친절도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을 듯...

 

이틀동안 묵었던 추산을 떠나,

오늘은 도동으로 간다.

내일이면 렌트카를 반납해야 하기에,

도동으로 가는 길에 오늘은 해안일주를 하기로 한다.

 

 

추산에서 동쪽으로 가면 길 끝에 섬목이 나오는데,

섬목에서 내수전까지는 해안도로가 없다.

 

 

그래서 섬목에서 도동까지는 다시 섬을 한바퀴 돌아 나와야 한다.

섬을 한바퀴 돌면서 이곳저곳 구경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추산에서 섬목으로 가는 길...

아주 특이하게 생긴 바위 하나를 만났다.

마치 큰 코끼리가 바닷물에 코를 담그고 물을 먹고 있는 듯한 형상!

역시...

나만 그렇게 본 게 아닌가 보다.

이 바위의 이름이 "코끼리 바위"라고 하니...

 

코끼리의 코와 턱 사이로 나있는 해안도로를 지나니

울릉도만이 간직한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섬 옆구리를 끼고 뻗어 있는 해안도로!

오른쪽은 화산, 왼쪽은 바다!

오가는 차도 없는 이 한적한 도로를 창문 활짝 열고 달리는 그 느낌은

지금껏 한번도 맛보지 못한 신선함이 있었다.

 

 

바다로 뻗다가 갑자기 끊어진 산이 다시 일어서서 만들어졌다는 관음도!

 

 

그 사이가 섬의 목과 같다고 하여 이곳을 "섬목"이라 부른다.

 

 

섬목에 이르니 정말 길이 뚝 끊어져 있다.

길 끝에는 식당이 하나 있는데, 아침 식사라도 하고 가야지 싶어 들어갔더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식사가 안 된단다.

해안도로를 오다 보니 이 근방에는 식당도 없던데...

 

아주머니께 뜨거운 물을 좀 얻을 수 있겠냐 했더니,

흔쾌히 주신단다.

 

 

그래서 즉석으로 마련된 나의 아침 식사!

마침, 차에 실어놓은 컵라면이 있어 다행이었다.

 

 

울릉도에 와서 아침식사로 컵라면을 먹다!!

그것도 오래 기억될 추억이다.

 

 

길바닥에 앉아 조금은 처량한 모습으로 컵라면을 먹는데,

갈매기 한마리가 자꾸만 그 컵라면을 예의주시한다.

내가 한 눈이라도 팔면 금방 달려들 기세!

부리 끝이 빨간 걸 보니,

벌써 한 모금 먹은 거 아냐??? ㅎㅎㅎ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이 하나 있어 얼른 지도를 펼쳐 봤더니,

저곳이 바로 "죽도"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만 살고 있다는 섬.

물이 안 나와 본 섬에서 물을 공수해 살고 있다는...

그래서 외부인이 가도 절대 숙박을 할 수 없다는 섬,

죽도!

저곳도 가보고 싶지만, 이 울릉도 내에도 너무나 가봐야 할 곳이 많기에,

죽도는 울릉도에 한번 더 와야할 이유로 남겨놓는 것이 좋겠다.

 

 

울릉도의 끝자락에 발자국을 찍었으니,

이제 오늘의 베이스캠프인 도동을 향해 출발!!

 

 

인근 전망대에 올라 섬목을 내려다보니,

뚝 끊어진 길이 제대로 보인다.

 

기왕이면 일주도로를 만들지, 왜 여기서 끊었을까...

 

그 답은 며칠후 택시기사 아저씨께 들었다.

간단했다.

예산이 없어서!

 

 

섬목에서 내수전까지 5km 정도의 해안도로를 내는데

예산이 무려 2000 억이 든다고 한다.

다행히 올 연말부터 공사를 시작한다고 하는데,

2~3년 후엔 온전히 울릉도를 한바퀴 도는 해안일주도로를 만나 볼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이거이거...울릉도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자꾸만 늘어난다.

 

 

가로등엔 울릉도의 대표 명물,

오징어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가로등만 봐도 이곳이 울릉도임을 알겠다.

 

그런데 납량특집 호러영화를 능가하는 공포가

5월의 울릉도엔 도사리고 있었으니...

바로 낙석이다.

 

 

도로가엔 커다란 돌들이 한가득 떨어져 있고,

때론 도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돌덩이가 굴러와 있는 것을 본다.

 

겨우내 얼었던 산이 녹으면서 지탱할 힘을 잃은 돌들이 마구 떨어지는 것 같은데...

 

 

곳곳에 낙석위험 표지판이 서 있지만,

떨어지는 돌을 피할 재간은 없다.

그저 복불복...운에 맡길 수 밖에...

한마디로 화창한 봄날, 울릉도 해안도로는 목숨 걸고 다녀야 한다는 말씀!! ㅎㅎㅎ

 

 

힘없이 떨어지는 돌들과 비교하니,

경사진 바위 틈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풀들이 더 대견해보인다.

 

 

바다와 어우러져 있는 해안의 풍경은

달리던 차를 100m 도 못가 자꾸 멈춰 서게 만든다. 

낙석의 위험도 잊은채...

 

 

 

 

 

 

울릉도에 없는 것 중 하나가 "뱀"이라고 하는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울릉도에 많은 것이 다섯가지 있다는데,

향나무와, 돌, 바람이 많은 건 인정!

미인이 많다는 건 글쎄~

 

그리고 물이 많다는 건...

완전히 체감했다.

 

 

 

 

도로 옆으로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물 한 모금 맛보고 가라고 아예 가던 발걸음을 붙잡는 곳도 있다.

 

 

샘물 앞에선 지나던 관광객들도 모두 차를 세우고 물 한모금 맛보고 있었는데...

살짝 얻어 먹어본 물맛은....

꽤 시원하고 맛있었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도 너무나 볼 게 많은데,

잠시 시선을 갈매기에 고정해야 할 일이 생겼다.

갈매기가 짝짓기 하는 현장을 포착하게 된 것!

 

 

 

 

 

처음봤다.

수컷 갈매기가 암컷 갈매기 위에 올라 앉아 짝짓기를 하는 모습!

종족 번식을 향한 본능...

저 수컷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 암컷은 어떤 마음일까.

 

아주 짧은 20초짜리 자연 다큐 한편을 제대로 보았다.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

터널 앞에 신호등이 있다.

신호등이 빨간 색이면 터널에 진입해선 안된다.

가만히 보니 왕복 2차선으로 달리던 도로는

터널앞에서 갑자기 왕복 1차선으로 좁아진다.

멋모르고 빨간 불일때 진입했다가는

마주오는 차와 꽝~!!

 

 

섬목에서 내수전까지의 해안도로도 예산 때문에 못 내고 있는데,

터널이라도 1차로로 만들어 예산을 아끼고 싶었던 걸까...

아무튼 터널 앞에서 신호 대기 하는 것 또한 내겐 첫경험이었다.

 

울릉도는 그렇게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